바람의 노래를 들어보세요!

제주의 바람은 다르다. 단순히 기후적인 차이를 말하는 게 아니다. 이곳의 바람은, 다른 곳에서 느껴보지 못한 특별한 감촉과 소리를 가지고 있다. 습하고 무더운 여름날에도, 서늘하고 외로운 겨울날에도 제주의 바람은 한결같이 곁에 머문다. 마치 아무 말 없이 옆에 앉아 있는 친구처럼.

처음 제주에 내려와 이 바람을 맞이했을 땐 솔직히 그 존재가 부담스러웠다. 유난히 세차게 불고, 때론 문을 쾅 닫히게 만들고, 귀를 간질이는 소리를 밤새도록 만들어내는 그 바람은 내게 소음처럼 느껴졌다. 마음을 어지럽히고, 외부와 단절되는 느낌마저 들게 했다. 그저 조용한 시간이 필요했을 뿐인데, 그 바람은 늘 예고 없이 불어왔다.

하지만 어느 날이었다. 하루 종일 비가 내리다 그친 늦은 오후, 창문을 살짝 열어두고 바람이 들어오는 틈새에 귀를 기울였다. 그 순간, 무언가 달라졌다. 바람소리가 단순한 소음이 아닌, 자연의 언어처럼 느껴졌다. 풀잎이 스치는 소리, 나무가 흔들리는 마찰음, 창틀을 두드리는 바람의 손끝… 그것들이 겹겹이 쌓여 하나의 노래처럼 들려왔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이미지 출처: howbuilders

그날 이후로 나는 이 바람을 다르게 느끼기 시작했다. 제주에선 바람이 ‘소리’를 갖는다. 도시에서 듣는 바람은 대개 자동차 소음에 묻히고, 빌딩 사이를 스치듯 지나갈 뿐이다. 그러나 이곳 제주의 바람은, 살아있는 듯한 감정과 결을 가지고 있다. 불쑥 다가왔다가 스르르 멀어지는 그 느낌은 마치 누군가가 조용히 말을 거는 것 같다.

프랑스의 어떤 시인은 이런 말을 했다. “바람이 없다면 나무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 말처럼, 바람은 모든 것의 변화를 만들어 낸다. 나무도, 사람의 마음도. 나는 바람의 노래를 들으며, 내가 그동안 쌓아온 복잡한 생각들을 하나씩 내려놓게 된다. 바람이 지나가고 나면, 마음의 먼지가 사라진다.

명상가 틱낫한도 바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지금 들이마신 공기에는 나뭇잎의 속삭임과 별빛의 향기가 담겨 있다.” 그의 말처럼, 바람은 단순한 공기의 흐름이 아니다. 그것은 자연과 나를 연결시키는 매개다. 나는 그 바람을 통해 자연 속의 나를 발견하고, 현재로 돌아온다.

바람이 전하는 말들을 들으며 앉아 있으면, 어느새 복잡했던 생각들이 희미해지고, 과거와 미래로 나뉘었던 마음이 현재로 되돌아온다. 지금 이 순간에, 이 바람과 함께 살아 있다는 감각. 그것만으로도 하루의 무게는 조금 가벼워진다.

에밀리 디킨슨의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나는 바람을 보지 못했지만, 나뭇잎이 춤추는 것을 보며 그것이 존재함을 안다.” 우리가 종종 잊고 사는 것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람이다. 보이지 않지만 언제나 곁에 있는 존재. 소리 없는 위로. 그러한 바람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얼마나 깊이 느끼며 살아가고 있을까.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창문을 살짝 열고, 바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바람이 스치는 그 찰나에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자연과, 삶과, 그리고 나 자신과.

바람소리를 들어보셨나요?
오늘 하루, 잠시 멈춰 서서 자연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그저 바람이 불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맑아질 수 있다는 것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