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날은 말로 풀 수 없는 감정이 밀려옵니다.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지만, 막상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 감정이 희미해질까 두렵기도 하죠. 그래서 저는 ‘감정 쓰기’를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나만의 감정 쓰레기통이자, 동시에 치유의 공간이 되어주었습니다.
왜 우리는 쓰는 걸로 치유받을까?
심리학자 James Pennebaker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감정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심리적, 육체적 건강 모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그의 “Expressive Writing” 실험에서는 하루 15~20분씩 감정과 생각을 솔직히 적은 사람들의 스트레스 수치와 면역력 수치가 유의미하게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글로 감정을 ‘객관화’하는 과정은, 우리가 그 감정을 꺼내서 바라볼 수 있게 도와줍니다. 정리되지 않은 감정은 머릿속을 무겁게 채우지만, 글로 내보내면 생각이 선명해지고 마음의 공간도 다시 생겨나는 느낌이 듭니다.
일기장 속 눈물도 괜찮아요
처음에는 저도 감정을 적는 게 어색했어요.
‘내가 이렇게까지 예민했나?’ 싶기도 했고,
‘남들이 보면 유치하다고 하겠지’라는 생각도 들었죠.
하지만 그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이 아니니까 괜찮습니다.
어느 날은 억울한 마음을 쏟아냈고,
어느 날은 고맙다는 말을 적으며 울었습니다.
또 다른 날은 이유 없는 무기력을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문장으로 남겼습니다.
이렇게 솔직하게 적고 나면, 마음속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졌어요.

감정 쓰기를 위한 간단한 팁
1. ‘잘 쓰려고’ 하지 마세요
문법도, 맞춤법도, 논리도 필요 없습니다.
그저 지금 느끼는 감정을 말하듯 적는 것이 핵심입니다.
2. 정해진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보세요
매일 같은 시간에 몇 분씩만 적어보는 것, 예를 들면 자기 전 10분, 아침에 커피 마시면서 5분 정도면 충분합니다.
3. 종이든 디지털이든, 당신에게 맞는 방식을 찾으세요
누군가는 손글씨의 감성이 좋고, 누군가는 타이핑이 편할 수 있습니다. 저처럼 휴대폰 메모 앱에 적는 것도 좋고, 노트에 연필로 끄적이는 것도 좋습니다.
감정을 쓰는 건, 감정을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감정 쓰레기통”이라는 표현을 들으면, 감정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감정을 정리하는 과정입니다.
그 감정은 여전히 나의 일부이지만, 그 감정에 휘둘리지 않게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죠. 글로 쓴 감정은 내 안에서 더이상 부정적으로 머물지 않고, 다른 감정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작은 루틴이 주는 위로
요즘 저는 하루가 힘들었다면 꼭 5분이라도 씁니다. 누군가에게 털어놓기 어려웠던 감정을, 그 어떤 판단 없이 받아주는 공간이 되어주니까요. 마치 조용한 산속 나무 밑에 혼자 앉아 속마음을 꺼내는 기분이랄까요.
아직 감정 쓰기를 시도해보지 않으셨다면, 오늘 밤부터 작은 메모장 하나 꺼내 보세요.
“오늘 기분이 어땠는지”
“무엇이 불편했는지”
“나를 웃게 만든 것이 무엇이었는지”
그걸 적는 순간, 이미 마음의 반 이상은 치유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